차규선의 < 분청회화 >는 캔버스에 흙을 바르고 그 위에 흰색 물감을 덮은 뒤, 채 마르기 전에 긁어내어 분청사기를 회화적으로 변용∙확장한 화법이다. 작가는 흰색 물감의 면이 마르기 전, 화면의 전체 구성을 미리 떠올린 뒤 한 번에 그려 내며, 작업이 시작되면 중도에 멈추지 않고 몰입하면서 몇 시간 만에 완성해야만 한다. 이 몰입의 순간 긋는 획 하나하나는 사의(寫意)를 담아 (자신을 포함한) 만물에 내재한 본질로서의 자연을 표상하며, 이는 문인화적 특성을 띈다. 한 획으로 그어진 선은 나무 한 그루가 되고 곧이어 산세로 이어지는데, 전통 수묵화와 닮은 듯하나 닮지 않았다. 차규선의 선묘는 전통 산수에서 먹의 농담과 필법으로 사의(寫意)를 담은 풍경을 그려내는 방식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긁혀 나간 자리 아래로 드러난 캔버스 면과 그 옆에 뭉쳐진 물감의 물질성을 지닌다. 이는 감상자에게 그림 속과 바깥 사이를 오가게 하는 입체적 감각으로 와닿는다.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 온 화법은 단색조를 기반으로 하기에, 그 재료가 변주되는 과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초기의 풍경들은 빠른 필획과 뿌리기로 거칠게 휘몰아치는 숲의 바람을 담아냈다가도, 하얀 물감을 물로 뭉근하게 씻어 내어 안개 낀 듯 몽환적인 설경을 그리기도 하는 등 격정적이고 변화무쌍한 양상을 보여 준다.(「풍경」, 2008년 등) 작품은 작가의 심경을 솔직히 담아내는 기록으로도 보인다. 평생 살아 익숙한 지역을 떠나 제주라는 생소한 환경에 머무르며 썼던 일기는 캔버스 위에서 글씨로 표현되기도 하였다.(「제주일기」, 2011년 등)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세속의 추함을 마주하며 그것에 반응하는 자기 내면에 집중하여 그림으로 담거나 가끔 일기나 편지의 한 구절처럼 제목을 짓기도 한다. 세상에 염증을 느끼며 그린 작품의 제목을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지 말자 >로 지어 시인인 친우에게 보내자 그 화답으로 온 말을 제목으로 삼은 「그래도 볼 수 있을 때 봅시다」(2025)는 자신의 그림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게 된 (의도치 않은) 경험이 담겨 있다. 일상에서 나눈 대화가 작품을 그려 낸 과정과 겹치며, 삶 속에 작품을, 작품 속에 삶을 중첩시키는 작가의 모습 역시 그곳에 비친다.
차규선은 흙을 칠하고 하얀 분을 발라 매일의 시(詩)를 그린다. 손가락을 들어 흙바닥에 선을 긋는 인간의 그리기 본능이 지금까지도 새롭게 감각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 형다미 /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선임 큐레이터
* ‘MIMESIS SE’는 ‘MIMESIS Solo Exhibition’의 약자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리는 22번째 개인전임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