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윤
구지윤은 도시를 그린다. 무너지고 쌓이면서 큰 건물이 세워지고 한순간 사라지기도 하는 도시의 압도적인 힘을 처음으로 인식하면서 시작한 작업이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거대한 도시, 그중에서도 작가의 유학 시절, 서울과 뉴욕을 빈번하게 오고 갔던 경험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머물며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도시의 거대한 에너지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에 주목하게 하였다. 도시의 폐기물과 파편 더미가 쌓인 공사장을 모델로 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는 「Useless Emotion」(2009)과 추상적 파편의 형태가 인물화의 구도와 중첩된 「소녀」(2009)는 구지윤의 초기 작품이 지금과 같은 완전한 추상의 이미지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초기 작품은 궁극적으로는 현재 작품들과 맥락을 같이하기에 구지윤의 그림 안에서 도시와 연관된 조형 요소를 찾고자 하는 관객에게 힌트가 되기도 한다. 작가에게 도시는 관망의 대상이 아닌 본인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공간이자 시간과 경험이기에, 본인 혹은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화상과 같은 형태를 중첩하여 쌓아감으로써 유기체적인 도시의 면모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삼아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물화를 연상시키는 조형은 점차 해체되고 있지만, 작가가 시기마다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변화는 그림의 색과 형태에 담겨 화면에 반영된다는 점은 한결같다. 작가가 최근 그림을 시작하는 시점은 좀 더 가까이 옮겨 왔다. 「껌, 지렁이, 먼지」(2016)와 「글래스 앤 그래스」(2021) 같은 작품에는 작가의 시선이 깨진 아스팔트 바닥, 그 사이에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고 올라오는 식물과 같은 것들에 닿아 있으며, 제목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추측할 수 있어 추상 회화임에도 구체적이라는 인상마저 든다. 구지윤은 「사라지는 사물」(2024) 연작에서 도시의 시멘트 벽, 바닥 등 구조물의 틈새, 작은 구멍을 향한 시선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연상을 그려 낸다. 이를테면 미시적인 관점에서 틈새 공간으로 차원의 이동을 하듯 들어가 보면 부스러진 시멘트, 모래, 먼지 입자 들이 떠다니는 비정형의 상태가 펼쳐져 있고,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까지도 존재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이 그것이다. 구지윤이 그리는 추상의 이미지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구체적이기도 하다. 즉, 구체적 형상을 그리지 않는 작가가 고도로 집중하여 공기의 떨림, 미세한 소음, 진동과 같은 순간적인 감각을 잡아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정함과 미묘한 불안까지 감지하고 그려 내기에 결과적으로 대상은 구체적인 상태가 된다.